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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JsPZ_wdChA

 

◈그옛날 우리가살던 추억어린 사진◈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4.4 거리에서 파는 냉차 행상. 한 어린이가 시원한 음료수 한병으로 목을 축이는

 중학생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959년 1월16일 을지로2가에서 차량이 충돌해 길가 한가운데 나뒹굴고 있다.

1959년 1월6일 새해를 맞아 첫 출근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상경한 근로자들이

서울역사를 나서고 있다.

1959년 3.1절을 맞아 공무원과 시민 학생들이 탑골 공원에 모여 기념식을 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학생들이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을 맞아 기념식을 갖고 참가자들이 학생 밴드부를 선두로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서울역앞.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행인들이

입을 막은채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있다.

1959년 3월1일 여자어린이들이 덕수궁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3.1운동 발상지. 서울 세브란스병원 부근. 남대문로 5가 15-75번지

 1959년 3월1일 종로의 탑골공원과 낙원동 일대

1959년 3월 20일 명동성당이 보이는 명동 일대  

 1959년 3월 20일 명동성당이 보이는 명동일대 전경

 1959년 4월8일 서울 종로2가 보신각  

1959년 4월8일 서울 종로2가의 화신백화점 과 신신백화점

 

 

    (왼쪽.지금의 제일은행 본점 건물자리)


1959년 4월8일 원구단 방향에서 바라본 조선호텔의 옛모습.

1970년에 헐리고 이 자리에 현대식 고층건물(롯데호텔)이 들어섰다
 
.   
1959년 4월8일 조선호텔과 원구단.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조선호텔의
옛모습과 팔각정 형태의 원구단
 
    
1959년 3월 중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부모와 함께 교모와 교복 가방을구입하고 있다
 
.
1959년 3월1일 허니문 카를 본따서 만든 이동 어린이 놀이기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
1959년 3월2일 50년대 말 명동거리의 패션. 양장차림의 서양여인과
한복차림에 쪽진 머리의 한국여성이 대조적이다
 
.
1959년 3월3일 풍문여자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는
교문밖에는 꽃다발 행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59년 4월 4일 냉차, 아이스크림 등 거리의 노점상들이어린이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군것질을 팔고있다.


 

1959년 4월 6일 유치원생들과 학부모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1959년 4월14일 비가 내리는 광화문의 한 가게 앞에 비닐우산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959년 4월14일 우량아선발대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한

 어린이들의 앉은키와 몸무게 등을 재고 있다.


 

1959년 4월18일 덕수궁에 놀러나온 여자 어린이들


 

1959년 4월15일 급수 리어커가 오면 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15일 수돗물 사정이 좋지않던 시절 급수 리어커가 오면물동이로

길어나르기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년 4월 소공동 환구단(원구단) 주변 모습. 환구단 뒤로 반도호텔이 보인다.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1959년 4월의 돈암동. 낮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1959년 4월 을지로 입구. 도로에는 버스와 전차가 다니고 있다.


1908년 8월 일제가 설립한 경성동양척식주식회사.

위 사진 오른편에 이 건물 모습이 보인다.


 

경성동양척식 주식회사 지금은 외환은행 명동본점 건물이 들어서있다.


 

  

1959년 4월 종로거리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광화문 사거리 주변 모습. 사진 왼쪽에는 서울 시민회관이

건축중이고, 뒤쪽 가운데에 중앙청(구 조선총독부)의 모습이 보인다.



1959년 남대문로 주변 모습. 서양식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http://www.gangseosenior.or.kr/adult_files/%EC%9A%B0%EB%A6%AC%EB%82%98%EB%9D%BC%EA%B5%AD%EB%B3%B41~50_1167367794.exe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조선시대 궁궐 모습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조선시대 궁궐 모습이 담긴
미공개 유리건판 사진들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건춘문 동쪽으로 이전되기 전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으로
이를 확대하면 '光化門'이란 현액 글씨가 뚜렷하다.
나아가 그 전면 월대를 포함한 광화문 전경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
열린 우협문 안으로 보이는 흰색 가건물 지붕 일부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건물로 추정된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직후에 촬영했다고 판단된다.


 

조선총독부서 찍은 경복궁 근정전 주변 사진. 전각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원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7년 조대비(趙大妃)를 위해 지은
경복궁 자경전. 이곳은 이후 두 차례 화재를 만났다가 1888년(고종 15) 재건됐다.
꽃담으로 유명한 이곳 서측 담장에는 꽃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문양은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꽃과 나비 등을 조합한 것이다.


현재의 자경전 꽃담에는 아홉 개가 아닌 여덟 개 꽃 문양이 남아 있다.
윗쪽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이며

아래쪽은 그 현재 모습.

 


경복궁 자경전 꽃문양


 


앙부일구는 조선 1434년(세종 16)에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로
창덕궁 소장품으로 현재 여주영릉전시관과 창덕궁에 전시 중이다.
현재 이 앙부일구는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돼 있으나

(오른쪽) 일제강점기 때 유리건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받침돌에 몸체가 감입돼 앉힌 모습이다.

 

나아가 대석 옆쪽으로 빗물이 빠져나오게 하는 구멍이 뚫려 있음이 확인된다.
(왼쪽과 가운데) 앙부일구 원래 모습을 고증할 수 있는 사진이다.

 



 


 

창덕궁 원래 위치 보루각에 있을 당시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들 유리건판 사진에서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 수수호 둘,

그리고 수수통 둘만 남아 있으며 부표는 없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수수통 양 옆에는 측우기와 석조대와 위치한다.


 

자동 시보장치 물시계인 자격루는 현존품은 1536년(중종 31)에 제작품으로

현재 덕수궁에 옮겨져 있다

 

 

조선국왕 용상 뒤에 설치한 그림병풍인 일월오봉병으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에 촬영된 경복궁 근정전(윗쪽)과

덕수궁 중화전(가운데) 작품.


이에는 한결같이 해와 달 부분에 금속판이 붙어 있으나
현재의 일월오봉병(아래쪽)에는 이 금속판이 없다.

 


 1935년 경복궁 건청궁 터에 조선총독부종합박물관을 짓기 위한 지진제를 지내고 있다.

일본 신도(神道) 방식으로 식장이 차려지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조선총독이 절하고 있다.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당한 현장으로 총독부를 이를 모두 철거하고

종합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다가
전시체제가 확산됨에 따라 총독부미술관을 짓는 데 그쳤다.

 

 

1929년 지금의 경복궁 건춘문 일대로 옮긴 광화문 문루에서 본

경복궁 동쪽 궁성과 건춘문, 동십자각 일대 전경.

왼편에 중학천이 흐르고
그 동편에는 민가들이 밀집해 있다.


1929년 박람회로 궁성이 파괴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붕괴사고 현장.

궁장 대부분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그 바로 옆은 무너져 있다.


이 붕괴사고는 1926년 4월27일 오전 10시에 일어났으며
그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해서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이라고 매일신문 4월29일자 기사에서 확인된다.

 

 

동경에 거주하던 이왕세자와 그 왕비 등 일행이 1922년 일시 귀국했을 때
희정당에 도착하는 장면. 자동차에서 내리는 여인은 이왕세자비 이방자.

 

 

1922년에 고국을 방문한 이왕세자 일행이 동경으로 돌아가기 전
어느 날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기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첫줄 왼쪽부터 정무총감 부인, 사이토 총독 부인, 의친왕비, 이방자 여사,
순정효황후, 순종, 이왕세자, 의친왕, 사이토 총독, 정무총감 등의 순서다.

 

 

1922년 이왕세자 내외의 창덕궁 체류 중 후원 나들이를 촬영한 장면으로 보인다.
건물은 영화당이며,

맨 앞부터 뒤로 순정효황후, 이왕세자, 이방자, 덕혜옹주 등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창덕궁 인정전 앞 마당의 박석을 없애고 화초를 심고있다.
조선의 문무고관들이 왕에게 하례하던

상장적인 공간을 일제가 훼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귀중한 자료글 받은 Mai (황소뿔) 옮깁니다!

2019.12.2.아띠할멈.().

http://cafe.daum.net/aznos


 

 

 

 귀중한 역사자료를 게재합니다(2019.12.3. Spac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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