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조선시대 궁궐 모습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조선시대 궁궐 모습이 담긴
미공개 유리건판 사진들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건춘문 동쪽으로 이전되기 전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으로
이를 확대하면 '光化門'이란 현액 글씨가 뚜렷하다.
나아가 그 전면 월대를 포함한 광화문 전경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
열린 우협문 안으로 보이는 흰색 가건물 지붕 일부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건물로 추정된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직후에 촬영했다고 판단된다.


 

조선총독부서 찍은 경복궁 근정전 주변 사진. 전각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원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7년 조대비(趙大妃)를 위해 지은
경복궁 자경전. 이곳은 이후 두 차례 화재를 만났다가 1888년(고종 15) 재건됐다.
꽃담으로 유명한 이곳 서측 담장에는 꽃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문양은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꽃과 나비 등을 조합한 것이다.


현재의 자경전 꽃담에는 아홉 개가 아닌 여덟 개 꽃 문양이 남아 있다.
윗쪽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이며

아래쪽은 그 현재 모습.

 


경복궁 자경전 꽃문양


 


앙부일구는 조선 1434년(세종 16)에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로
창덕궁 소장품으로 현재 여주영릉전시관과 창덕궁에 전시 중이다.
현재 이 앙부일구는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돼 있으나

(오른쪽) 일제강점기 때 유리건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받침돌에 몸체가 감입돼 앉힌 모습이다.

 

나아가 대석 옆쪽으로 빗물이 빠져나오게 하는 구멍이 뚫려 있음이 확인된다.
(왼쪽과 가운데) 앙부일구 원래 모습을 고증할 수 있는 사진이다.

 



 


 

창덕궁 원래 위치 보루각에 있을 당시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들 유리건판 사진에서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 수수호 둘,

그리고 수수통 둘만 남아 있으며 부표는 없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수수통 양 옆에는 측우기와 석조대와 위치한다.


 

자동 시보장치 물시계인 자격루는 현존품은 1536년(중종 31)에 제작품으로

현재 덕수궁에 옮겨져 있다

 

 

조선국왕 용상 뒤에 설치한 그림병풍인 일월오봉병으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에 촬영된 경복궁 근정전(윗쪽)과

덕수궁 중화전(가운데) 작품.


이에는 한결같이 해와 달 부분에 금속판이 붙어 있으나
현재의 일월오봉병(아래쪽)에는 이 금속판이 없다.

 


 1935년 경복궁 건청궁 터에 조선총독부종합박물관을 짓기 위한 지진제를 지내고 있다.

일본 신도(神道) 방식으로 식장이 차려지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조선총독이 절하고 있다.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당한 현장으로 총독부를 이를 모두 철거하고

종합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다가
전시체제가 확산됨에 따라 총독부미술관을 짓는 데 그쳤다.

 

 

1929년 지금의 경복궁 건춘문 일대로 옮긴 광화문 문루에서 본

경복궁 동쪽 궁성과 건춘문, 동십자각 일대 전경.

왼편에 중학천이 흐르고
그 동편에는 민가들이 밀집해 있다.


1929년 박람회로 궁성이 파괴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붕괴사고 현장.

궁장 대부분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그 바로 옆은 무너져 있다.


이 붕괴사고는 1926년 4월27일 오전 10시에 일어났으며
그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해서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이라고 매일신문 4월29일자 기사에서 확인된다.

 

 

동경에 거주하던 이왕세자와 그 왕비 등 일행이 1922년 일시 귀국했을 때
희정당에 도착하는 장면. 자동차에서 내리는 여인은 이왕세자비 이방자.

 

 

1922년에 고국을 방문한 이왕세자 일행이 동경으로 돌아가기 전
어느 날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기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첫줄 왼쪽부터 정무총감 부인, 사이토 총독 부인, 의친왕비, 이방자 여사,
순정효황후, 순종, 이왕세자, 의친왕, 사이토 총독, 정무총감 등의 순서다.

 

 

1922년 이왕세자 내외의 창덕궁 체류 중 후원 나들이를 촬영한 장면으로 보인다.
건물은 영화당이며,

맨 앞부터 뒤로 순정효황후, 이왕세자, 이방자, 덕혜옹주 등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창덕궁 인정전 앞 마당의 박석을 없애고 화초를 심고있다.
조선의 문무고관들이 왕에게 하례하던

상장적인 공간을 일제가 훼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귀중한 자료글 받은 Mai (황소뿔) 옮깁니다!

2019.12.2.아띠할멈.().

http://cafe.daum.net/aznos


 

 

 

 귀중한 역사자료를 게재합니다(2019.12.3. Space) 감사합니다.




https://youtu.be/muB4_LNZ2Rk

 

金冠 및 裝飾品 國寶

 

國寶 87호 금관총금관

金冠塚金冠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이 금관(金冠)과 관모(冠帽)는 모두 금판(金板)을 오려서

금실·금못으로 엮고 붙였다.

금관(金冠) 표면 전체에는 곡옥(曲玉)들을 꿰어 달았으며,

대륜(臺輪) 좌우에는 끝에 비취 곡옥이 달린

긴 수식(垂飾)이 1줄씩 늘어져 있다.

 

國寶 191호 금관 및수하식<98호북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관이다.

신라 금관을 대표하는 것으로 높이 27.5㎝,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수식) 길이는 13∼30.3㎝이다

    ;;;

國寶 188호  천마총금관

 이 금관은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32.5㎝의 전형적인 신라 금관으로 묻힌 사람이

쓴 채로 발견되었다

 

國寶 88호 금관총과대및요패

金冠塚과帶및腰佩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1921년, 경주시(慶州市) 노서동(路西洞) 금관총(金冠塚)에서

금관(金冠)(국보 제87호)과 함께 출토된 것이다.

 

 國寶 190호  금제과대및요패<천마총>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허리띠(과대)이다

과대란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인

허리띠로 길이 125㎝, 띠드리개(요패)의 길이는 73.5㎝이다

 

國寶 192호 금제과대및요패<98호북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의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금 허리띠(과대)와 띠드리개(요패)이다.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2개의 봉분이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있다.

 

國寶 89호  금제교구(金製교具)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 중앙박물관

1916년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제교구로, 길이 9.4㎝, 너비 6.4㎝이며,

허리띠를 연결시켜주는 금제 장식이다.

 

國寶 90호 금제태환이식(金製太環耳飾)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경주 보문동의 부부총(夫婦塚)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한쌍의 금귀걸이로, 길이 8.7cm이다.

 

國寶 138   금관및부속금구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가야의 금관과

부속 금제품이다

. 금관은 높이 11.5㎝, 밑지름 20.7㎝로 머리에 두르는 넓은

띠 위에 4개의 풀꽃 모양 장식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國寶 154호 금제관식 <왕>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이다.

높이는 각각 30.7㎝, 29.2㎝이고, 너비는 각각 14㎝, 13.6㎝이다

 

國寶 155호 금제관식 <왕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관(冠) 장식으로

, 모양과 크기가 같은 한 쌍으로 되어 있다.

 

 國寶 156호 금제 심엽형이식 <왕>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금 귀고리 한 쌍으로

길이는 8.3㎝이다. 왕의 널(관)안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호화로운 장식이 달려있다.

國寶 157호 금제 수식부이식 <왕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귀고리 2쌍으로

길이는 11.8㎝, 8.8㎝이다. 왕비의 귀고리로,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작은 장식들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國寶 158호  금제경식 <왕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무령왕비의 목걸이로,

길이는 각각 14㎝, 16㎝이다.

 

國寶 159호  금제 뒤꽂이 <왕>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다.

무령왕릉 나무널(목관) 안 왕의 머리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는 18.4㎝, 상단의 폭은 6.8㎝이다.

 

 國寶 160호  은제 팔찌<왕비>

 

 공주시 무령왕릉 왕비의 나무널(목관)내 왼쪽 팔 부근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은제 팔찌로,

바깥지름 8㎝, 고리지름 1.1㎝이다

 

 國寶 189호  금모<천마총>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모자이다

 금모(金帽)란 금으로 만든 관(冠) 안에 쓰는 모자의 일종으로

높이 16㎝, 너비 19㎝인 이 금모는

널<관(棺)> 바깥 머리쪽에 있던 껴묻거리(부장품) 구덩이와

널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

國寶 194호 금제경식<98호남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길이 33.2㎝의 금 목걸이이다.

 

國寶  287호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4㎝,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

國寶 140호  나전단화금수문경

가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나전기법으로

만든 거울로 지름 18.6㎝, 두께 0.6㎝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으로,

이와 같은 나전기법으로 만든 거울이 일본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어 특히 주목된다

 

國寶  146호 ;강원도출토일괄유물

청동기시대 만든 의식용 유물들로 정교한 제작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당시 신앙이나 의식 연구에도 도움을 주는 중요한 유물들이다.

 

國寶  162호  석수 (石獸)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만들어진 석수이다.

석수(石獸)란 돌로 만든 동물의 상(像)으로 좁게는 궁전이나

무덤 앞에 세워두거나 무덤 안에 놓아두는 돌로 된

동물상을 말한다

 

國寶 164호  두침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비의 머리를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베개로,

위가 넓은 사다리꼴의 나무토막 가운데를 U자형으로

파내어 머리를 받치도록 하였다

 

國寶  165호  족좌<왕>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으로왕의 발 받침대이다.

 ;

國寶 171호   청동 은입사보상당초봉황문합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뚜껑이 있는 그릇(합)으로

높이 9.9㎝,아가리 지름 18.3㎝의 크기이다.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한 은을 박아 장식(은입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그릇으로,

아래 몸통과 뚜껑의 크기가 같아 안정감 있게 보인다.

    

國寶 174호  금동 수정감장 촉대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높이 36.8㎝, 밑지름 21.5㎝의

수정이 박힌 금동제 촛대 한 쌍이다.



https://youtu.be/o70MzTHHNbI

https://www.youtube.com/embed/B13GqhvtSbw

http://tour.jeonju.go.kr/index.9is?contentUid=9be517a762e870eb016415b1e0375fc5

https://www.youtube.com/embed/2rQFYu1lQnc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QJN6pgyYFnU"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Recent posts